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
"Was ist deine Theorie?" 네 이론은 뭔가?

독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주 특이한 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작은 카드에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학교 앞, 노점상들도 다양한 크기의 카드를 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드를 정리하는, 알파벳이 순서대로 적힌 다양한 모양의 상자도 팔고 있었다. 나무, 가죽, 플라스틱 등 모양과 정리도 참 다양했다.

독일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자신이 공부하며 요약한 카드와 그 카드를 정리하는 카드 박스가 꼭 놓여 있었다.

한국식 학습 방법의 문제는 바로 노트에 있었다.
내가 독일에서 배운 것을 하나로 표현하라면 바로 이 편집 가능성이다. 카드 맨 위에는 키워드를 적고 그 밑에는 그것과 연관된 개념(연관 검색어)을 적고, 출처와 날짜 등을 차례로 적는다. 그리고 카드의 앞,뒤장에 그 내용을 빼곡히 요약한다.

이렇게 모인 카드는 주로 알파벳순으로 정리한다. 내가 쓰려는 논문의 순서에 따라 정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독일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공부한다. 그러나 한국 학생이 따라갈 수 없는 결정적 차이는 '자기 생각'이다. 독일 학생들은 모은 카드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시 편집한다.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쓰는 것이다(노트는 재구성할 방법이 없다). 카드 목록을 재구성하며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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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편집에 따라 인간 심리는 달라진다!

한국에서의 토론식 수업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장소를 바꿔 수업을 해보니 학생들의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따뜻한 봄날 잔디밭에 나가 야외 수업을 해보니, 수업의 양상이 강의실과는 전혀 달랐다. 나무 그늘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은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꺼냈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그 강의실의 학생들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강의실의 구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게 되면,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학생들 간의 소통은 계속된다. 수업 내용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표정과 자세를 언제든 살펴볼 수 있다(시선 공유).

세미나실의 책상 배치가 교육의 내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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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대학의 마이어스-레비 교수는 천장 높이를 30cm 높일 때마다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관점이 거시적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반대로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에서는 사물을 꼼꼼하게 바라보게 되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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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놀이.

사무공간도 즐거워야 창조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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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록세미스의 상호작용의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 간의 거리

1. 친밀한 거리 : 45cm 이내

2. 개인적 거리

3. 사회적 거리 : 120~360cm

4. 공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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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끼리는 마주 보는 것보다 모서리를 사이에 주고 앉는 것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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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된 규율을 익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몸으로 배우는 결코 잊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법을 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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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력과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과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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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스스로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진리를 강요할뿐, 일리의 해석학이 빠져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의 내러티브는 상호작용적이다. 편집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의미 있다. 남이 만들어주는 의미는 전혀 의미 없다. 진리를 계몽하던 시대는 지났다.

듣는 이로 하여금 '주체적 편집의 기회(의미 편집)'를 제공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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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티의 핵심을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고 규정한다.

근대 후기의 성과 사회는 각 개인을 끊임없는 자기 착취의 나르시스적 장애로 몰아넣는다.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발적 자기 착취'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일원론적 발달과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주체는 죽을 때까지 안정된 자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후기 근대적 주체의 미완결적 성격은 자신을 태워버리는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독일식 개인 : ~을 해야만 한다. ~을 해서는 안된다. 타율적 규제, 억압, 강제로 인해 주체는 끊임없이 불안함을 느낀다.

미국식 개인 : 긍정성,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미국식 개인에서 나타나는 능력의 무한 긍정은 독일식 개인의 금지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고 위헙하다는 것이 한병철 교수의 주장이다. 끝 모르는 자기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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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쌓이면 한가하게 다 읽을 수 없는 노릇이다. 발췌해서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찾아 읽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읽고 싶은 것이 뭐냐는 거다.

내 질문이 없으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물론 정말 재미있는 책은 다 읽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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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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