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뷔야르

[ ÉDOUARD VUILLARD ]

 

원어 Jean-Édouard Vuillard(원어)
출생-사망 1868년 11월 11일 ~ 1940년 6월 21일
출생지-사망지 프랑스 퀴소 - 프랑스 라볼
예술양식 패턴적이고 장식적이며 심미적인 캔버스, 가정의 실내를 주제로 그림, 풍경화, 초상화, 무대 배경,
나비파의 일원
작품 미술작품 감상하기

 

에두아르 뷔야르는 가정적인 실내 장면을 그린 가장 대표적인 화가이며, 이러한 그의 실내 장면은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사실주의 전통을 혁신적이고 근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또한 그의 미술에 있어서 본질적인 조화를 의미한다. 뷔야르는 나비파 양식과 폴 세뤼지에의 종합주의 양식을 토대로 하여 작업했고, 장면의 실제성을 유지하면서 무늬와 장식, 그리고 선에 대한 섬세한 미적 감각을 가미했다. 그의 작품들 중 대다수는 다른 세상에나 있을 법한 신비로운 인상을 보여주며, 미묘한 색조와 서정적인 빛과 분위기는 깊은 정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뷔야르는 파리에 있는 디오젠 마야르의 작업실에 얼마간 시간을 보냈다. 이후 1886년에 쥘리앙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토니 로베르 플뢰리에게 미술 교육을 받았다. 또한 뷔야르는 장 레옹 제롬의 추천을 받아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에서도 잠시 공부했었다. 1888년에 뷔야르는 쥘리앙 아카데미에서 만난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모임인 나비파에 가입하여 폴 세뤼지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세뤼지에는 폴 고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었다. 나비파 화가들은 한 순간의 빛과 분위기를 포착하기 위한 인상파의 색채분할 기법과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장식적인 일본 목판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가시적 세계를 정확하게 관찰하여 색채를 끌어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이들은 분위기 표현을 위해 자연의 색보다 과장하거나 왜곡시켰다. 뷔야르는 1890년대에 대규모의 장식적인 주문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900년에는 초상화와 풍경화로 전환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뷔야르는 초기작품들에서 보여준 시적인 특성을 유지하면서 초기 나비파 양식의 평면적인 원근법에서 벗어나, 좀 더 계산된 원근법으로 공간의 후퇴를 표현하는 등, 보다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추구했다. 1940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는 상당한 호평을 얻었고 동료 화가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뷔야르는 자신의 어머니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그녀는 재단사였는데, 이런 점이 뷔야르가 직물과 무늬들에 관심을 갖게 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화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개인적으로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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