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물어보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사는 게 이렇지’ 나름대로 결론이 지어져야
그래야 이 것에 대한 에너지가 더 이상 투입되지 않아요.

https://youtu.be/GWzCWJcS2TY?si=4bgugBpbj-J5FE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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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해서 세상에 나를 보였습니다. 작품을 고를 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 여자가 지금 현실이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의 빛이 보이는 역을 했습니다. 보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역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삶에 절망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내가 맡은 역으로 그 절망을 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비록 절망적이어도 저 멀리 희망이 보여서 비집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역을 했습니다. 형편없는 몰골의 역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 여자에게 희망이 기다리고 있나?’
그것을 따졌습니다.

-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똑같은 엄마 이야기는 더 이상 하기 싫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영화를 함께하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모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내가 연기한 캐릭터와 유사한 역할뿐이었습니다.
나는 늘 다중적인 인간을 그린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데… 내가 관객이라도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습을 영화관에서 돈 내고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
하지만 실제로 촬영에 들어가면서 생각이 단순해졌습니다. 대본에 있는 것만 표현하자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연기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마더’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연기를 갈망했습니다. 복잡한 인간 심리를 되레 심플하게 연기해 내는 것. ‘마더’는 그걸 만족시켜 준 영화입니다.

-
‘눈이 부시게’를 하고 나서 ‘아,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많이 느꼈습니다. 그냥 내 천성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노을이 예쁘면 예쁘다고 하고, 어린아이들과 놀고.

-
살아보니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도 가슴 아팠던 순간도 다 소중하게 모여서 기억이 돼요.
뇌가 쪼그라들어도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으로 살아요.

-
인생은 곧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
우리 삶이 때론 불행하고 때론 행복하다는 것을.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할지라도 그래도 살아서 좋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
‘셜리 발렌타인’
꿈을 잃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점. 그것이 이 연극의 매력입니다.
특히 여자가 끝부분에서 자신만 불행한 게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눈 자체가 커진 것입니다.
“남편에게도 휴가가 필요해. 살갗에 햇볕을 느낄 필요가 있어.”
상처투성이가 된 셜리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됩니다.
날마다 자기 생각만 하던 여자가 눈을 뜬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되는 행복한 결말입니다.

셜리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불쌍한 여자입니다. 그러나 혼자가 되면서 자기를 찾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좀 더 단순하고 혼자가 되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꿈꾸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낭비이니까.

자기를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이와 함께 있으면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다시 피어납니다.
…배우도 사랑받으면 피어나는 꽃입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난 이제 나 자신을 진실로 좋아하게 되었어. 난 내가 좋아요. 살아 있는 내가 정말 좋아요. 뛰어나지도 못하고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인물도 못 되지만, 그래도 난 살아 있는 걸요.
물론 상처도 있지요. 싸움에서 얻은 흉터도 있어요. 하지만 그 상처도 숨길 필요가 없겠지요. 그 상처, 그 흉터 모두가 살아 있는 증거이니까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 여자도 ‘예쁜 것’을 압니다.

어떤 옷을 고르느냐가 그 사람의 성품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
지나간 것은 그냥 지나간 대로 놓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
나도 사실은 매우 진취적인 사람이며, 어떤 면에서 특이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영화도 특이한 내용을 하고 싶었습니다. 평범한 영화나 보통의 사랑 이야기는 재미를 못 느끼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또 그 당시 최불암, 박근형, 오지명 배우의 아내로만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따분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고, 머릿속에서는 얼마나 특이한 생각들을 하는 여자인데 그런 것이 이상할 리 없습니다.

흥행 실패 때문에 잠시 기가 죽긴 했지만, 그것은 머리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내가 흥행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나는 아주 깍쟁이입니다. 내가 그것을 왜 신경 써서 스스로를 기죽여야 하는가? 이것은 어쩔 수 없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조금 더 예쁜 배우였으면 반응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간단히 했습니다.
나는 그 영화 촬영하면서 즐거웠고, 가슴이 뛰었고, 좋았습니다. ‘그럼 된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일 일은 신의 몫입니다.

-
김정수 작가, 김수현 작가
두 사람의 작품을 같이했다는 것이 나는 배우로서 말할 수 없는 행운이었습니다.
가장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과 인생에 대해 날카롭게 맞서는 작품 둘 다를 하면서 내가 성장했습니다.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하면서 행복했고 불행했고, 죽고 싶었고 살고 싶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양극의 감정을 맛보았습니다.

-
그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끝에 가서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남편 문상을 온 사람 중에 무좀 양말을 신고 온 이가 있었습니다. 슬픈 와중에도 그 발가락 모양이 어찌나 우습던지 울면서 얼굴을 가린 채 웃었습니다.
인생은 그만큼 부조리의 연속입니다.

한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뒤에서 희생한 다른 이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없습니다.
나는 배우로서 살아온 것 말고는 모든 부분에서 부족한 여자였습니다.

-
부족한 여자이기에 신이 좋은 남편을 붙여 주었고, 착한 아들과 딸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살 수 있었습니다.

-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
자신을 전직 프로 레슬링 선수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프로 레슬링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 오스카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장미 할머니는 오스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생각을 고백하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생각들, 그것들은 너에게 들러붙고 너를 짓눌러 꼼짝 못 하게 한 다음, 새로운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 너를 썩게 만들지. 고백하지 않으면 너는 구닥다리 생각들로 가득 찬 악취 나는 쓰레기장이 될거야.”
장미 할머니의 권유에 따라 소년은 하루를 10년이라고 생각하고 살기로 합니다.
오늘은 10대를, 내일은 20대를, 모레는 30대를… 그렇게 12일 동안 백 살이 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년은 장미 할머니의 제안에 따라 매일 신에게 하루의 일상을 전하는 편지를 씁니다.
“왜 신에게 편지를 써야 해요?”라고 묻는 오스카에게 장미 할머니는 “그래야 네가 좀 덜 외로울 것 같아서.” 라고 대답합니다.’

배우인 나에게나 관람하러 오신 분들에게나 이 연극이 모든 해답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신의 영역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
하지만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꽃과 책을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이 나의 한 부분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와 책)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죽음은 아무도 비켜 나가지 못합니다.

“오늘 난 백 살이 되었어요. 장미 할머니처럼요. 계속 잠이 쏟아지지만 기분은 좋아요. 난 엄마랑 아빠에게 삶이란 참 희한한 선물이라고 얘기를 해 줬어요.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선물을 과대평가해요. 영원한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나중엔 과소평가해요. 지긋지긋하다느니 너무 짧다느니 하면서 내동댕이치려고 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선물받은 게 아니라 잠시 빌린 거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래요, 삶은 선물이 아니에요. 잠시 빌린 것이죠. 빌린 거니까 잘 써야죠. 함부로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오스카가 묻습니다.
“삶에는 해답이 없다는 건가요?”
장미 할머니가 말합니다.
“삶에는 여러 가지 해답이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정해진 해답은 없는 거야.”
오스카가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요, 장미 할머니, 삶에는 사는 것 외에 다른 해답이 없는 것 같아요.”

-
실컷 울어도, 실컷 웃어도 마음이 순해집니다.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상대역인 주현 배우에게 “나 잠이 안와.”라고 했더니 자장가로 ‘서머타임’을 불러 줍니다. 그때 너무 좋았습니다. 치매가 깊어도 사랑이 구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만이 답인 것입니다.

나는 주현 배우가 맡은 남자 역이 참 좋았습니다. 촬영을 하면서도, 나중에 방송으로 보면서도, ‘인생에서 저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뭐든지 받아 주고, 나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고, 내 아들이 싫어하는데도 찾아와서 일감을 주고 갑니다.
“네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 가고 나서 내가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아느냐?” 라고 말하는 순정파입니다. 옛날 애인인데도 늘 와서 나를 보호해 주고, 다정하게 대해 주고, 여행도 데려갑니다. 그리고 군불 때는 방에서 가운데에다 가방으로 금을 그어 놓고 둘이서 잡니다. 그때 남자가 말합니다.
“참 세월이란 게 웃기다. 젋었으면 뺨을 맞았어도 너를 으스러지게 안았을 텐데, 지금은 졸려서 못 안겠다.”
그런 장면들이 무척 좋았습니다.
대본 속 인물이지만 그런 남자가 곁에 있어서 마음이 따뜻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것이 전부일런지도 모릅니다.

-
어찌 보면 우리 모두 길 위에 선 삶입니다. 아니면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처럼 ‘우린 다 인생이라는 기로에 서 있는 쓸쓸한 방랑자’인지도 모릅니다.
‘죽더라도 길 위에서 멋지게 죽을거야.’ 라고 선언하며 희자와 정아는 호기롭게 차를 몰고 떠나지만, 요실금 때문에 차를 세워야만 합니다.

-
노희경 작가
“사랑을 하면서 강한 사람은 없어. 사랑을 하면 모두가 약자야.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니까. 그리워하게 되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지지 않으니까. 우리 모두 약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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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내가 어떻게도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이 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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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을 다녀온 옥동은 새벽에 일어나 아들 동석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입니다. 그리고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 밥을 일일이 챙겨 줍니다. 그녀의 얼굴에 기쁨과 평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다음 홀로 자리에 누워 영원히 잠이 듭니다.

“사랑한단 말도, 미안하단 말도 없이 내 어머니 강옥동 씨가 내가 좋아했던 된장찌개 한 사발을 끓여놓고 처음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난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다는 걸.
난 내 어머니를 이렇게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다는 걸.”



-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하고, 타인에게 정을 줘 본 적도 없는 남자는 거친 언행으로 여자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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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사랑’
맨 처음 그림을 사 준 여성이 그림 그리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여자는 웃으며 말합니다.
“그건 아무도 못 가르쳐요. 그리고 싶으면 그리는 거예요.”
그 여성이 그림을 보며 질문합니다.
“이 나무는 빨간색인데 이쪽 나무는 초록색이네요. 이유가 있을까요?”
여자는 말합니다.
“음… 아름다워 보여서요. 아름다운 것을 다 담고 싶었어요.”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무엇이 우리를 구원하게 만드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역이라면 나도 꼭 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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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어떤 심리에서 그런 글을 쓰는지 보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심리, 각자의 성격, 처한 상황에 따라 댓글이라는 형식으로 은연중에 자기 대사를 하는 것입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우리 모두가 그 사건을 주제로 심리극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 심리극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억울한 희생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심리극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꿈꾸지만 그 자유를 얻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소리치는 댓글들을 포함해 모든 칭찬과 비난이 심리극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악성 댓글에도 조금은 덜 흔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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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살아요’
…이 드라마 속에 들어가 겨우겨우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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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이걸 골라낼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있다는 거죠. 때문에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실 때는 서로를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보면서 서로의 존엄성을 지켜 주는 것

노희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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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나 밤 10시에 편안하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생각하면,
내가 그 괴로움을 다 표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튀어 보이고, 보는 사람도 힘이 듭니다.
배역과 나를 동일시하면서도 슬픔의 표현을 조절해야만 합니다. 보는 사람이 ‘아,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힘들고 슬픈 순간을 견디며 감정을 조절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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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양념딸, 예쁜 양념딸.”
(양념딸은 고명딸의 사투리. 원래는 ‘다른 자새 없이 하나뿐인 딸’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귀여운 딸’이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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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매우 영리한 여자입니다. 바보 같고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영리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쪽으로 ‘촉’이 발달해 있습니다. 나는 나를 굉장히 아꼈습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순하고 어리숙해 보이지만, 어떤 직감은 매우 발달했습니다. 돈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고, 그들이 나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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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새들에게 모이를 줍니다. 다섯 시 반이면 습관처럼 눈이 떠지지만, 너무 일찍 주면 안 되니까 일곱 시까지 기다렸다가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서 쌀을 뿌려 줍니다. 예쁜 그릇에 물도 채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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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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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렇게 큰 똥을 싸는 꽃도 있나? 거기에 대해선 시인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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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택시에서 내리면 사람들이 놀라긴 합니다. 나는 나답게 솔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어떤 걸 아닌 척하고 살려면 힘이 더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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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푹 안 자서 그런지 불안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쓸쓸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나이를 떠나서 인생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밀려드는 감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대본을 쓰고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그 불안감을 밀어냅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끝나는 날까지 단정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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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이 배우가 이 역을 하면 좋겠다.’ 하고 선택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때를 준비하며 무의식중에도 책을 펼쳐 놓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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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별로 없는 나이입니다. 매일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삽니다. 배우로서 마지막 생을 잘 끝마치고 싶습니다. 인생 고비 때마다 ‘이만하면 감사하다.’며 나를 다독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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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선택할 때는 비록 현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더라도 그 사이에서 바늘귀만 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기를 하는 동안 살아 있음을 느꼈고,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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