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이사 가든 천사들은 우리 옆집을 빌릴 테니까. 

-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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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희망 없이

모두들 우리는 너무 피로하고 지쳐 있으며 변화될 가망은 없다고 느낀다. 내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운동가이자 퀘이커교도였던 파커 J. 파머는 놀랍게도 우리의 피로감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흑인인권운동의 가장 감동적인 싸움 중 하나였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만들어낸 로자 파크스의 결정을 그 예로 든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로자 파크스는 그만 해서는 안될 행동을 했다. 버스 앞쪽의 백인 전용 좌석에 앉은 것이다. 그것은 엄연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위험하고 대담하며 도발적인 행동이었다. 여러해가 지나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대학원생이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날 당신은 왜 버스 앞자리에 앉았나요?"

로자 파크스는 사회변혁을 꾀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진 않았다. 그녀의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피곤했거든요."

하지만 피곤한 건 그녀의 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영혼이,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존재 전체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규칙에 놀아나는 것에, 그녀 영혼이 주장하는 자아를 부인하는 것에 피곤해졌다는 의미이다."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지쳤기에 우리는 멈추는 일을 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조금이라도 고요한 곳에 앉아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야 한다. 만일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일들이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재앙이었다면 우리는 신과 자연의 섭리에 대해서 충분히 묵상해야 했을 것이다.

"고통의 가능성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치는 세계의 존재 그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습니다. 영혼들이 악해질 때는 틀림없이 이런 가능성을 이용하여 서로를 해치려 들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겪는 고통의 5분의 4는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고문과 채찍과 감옥과 노예와 총과 총검과 폭탄을 만든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많은 고통의 문제들이 신이나 불운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아이를 잃고 집에 돌아온 밤, 부모가 통곡을 하니 옆집에서 따라 울었다. 밤마다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100일쯤 지나자 옆집에서 신고를 했다. 야박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이 잃은 부모를 생각하면 여전히 안됐고 아이가 그리된 것도 한없이 가엾지만, 출근도 해야 하고 내 아이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밤새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계속 듣고 있기다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이웃의 고충을 알기에 부모들은 목 놓아 울지 못하고 숨죽이며 흐느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방해받지 않고 아무 때나 달려와서 실컷 울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했다.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면 우리는 이웃에 가닿을만큼의 신성을 가지고 있기는커녕 생계 때문에 사랑의 순결을 유보해야 하는 무력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가가고 사랑하는 일에도 배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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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희망 없이, 마치 젊은 새잡이가 지주의 딸에게 자기의 높은 모자를 휙 벗어 날려보내듯이

그리하여 감금되었던 종달새들이 도망쳐 날아오르게 하라

그녀가 말 타고 지나갈 때 그 머리 주위에서 노래하도록

-사랑하라, 희망 없이(로버트 그레이브스)

 

연인이든 삶이든 주어진 것만을 받아들이라는 명령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마음의 새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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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쓰러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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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학생 엄마가, 하루는 집에 와보니 아이가 어디 간다는 이야기도 없이 열한시까지 안 들어왔더래요. 걱정이 돼서 사방을 헤매다녔는데, 알고 보니 자기 교실에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달려가보니 아이가 자기 교실에 가서 여기 앉아서 한참을 있다가, 또 자리를 옮겨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러더래요. 엄마가 기가 막혀하며 교실에 들어갔더니 아이가 방해되니까 나가달라고 하고요. 그래서 그 엄마가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친구를 자꾸 그리워하면 친구가 하늘나라에 못 간다. 네가 떠나보내줘야 된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죠. 많은 분들이 이 엄마가 잘하신 거라고 생각할거예요. 사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렇게 할거고요. 두려우니까요. 밤 열한시에 여자아이가 혼자 불 꺼진 교실에 앉아 있다는 게 상상만 해도 무섭잖아요. 아이라고 왜 안무섭겠어요. 그런데 그 아이에게는 무서움을 뛰어넘는 다른 더 강한 감정이 있는 거예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요. 친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관계가 단절되잖아요. 같이 나누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못다 한 채로 남게 되죠. 그게 정리가 되어야 이 관계로부터 떠나갈 수가 있어요. 하고 싶었던 일들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기에서 영영 못 떠나요.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내주어야 하고 자신은 일상으로 돌아와야 된다는 걸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나이면 잘 압니다. 몰라서 안되는 게 아니라 알아도 안되는 거죠.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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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는 아름다웠고 영화는 쓸쓸하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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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좌절을 주는 것

좌절감에 대응하는 것은 핵심적인 삶의 기술(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약간 기다리게 하는 것

매일매일 사랑과 더불어 약간의 좌절을 부과하라

어린 나이에는 끝이 없는 요구와 욕망을 갖게 마련임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존중하되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기다리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비명을 질렀더니 엄마가 곧장 달려와서 기다림이 끝나면 아이는 아 이렇게 하면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배우게 된다. 잘못된 보상.

건강한 아이라면 울며 떼를 쓰지 않고 '안 돼'라는 한마디에 무너지지 않으며, 조르거나 원하더라도 바로 움켜쥘 수 없다는 걸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충동적 변덕. 쇼핑 중 갑자기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면 매우 차분한 태도로 다정하게 장난감을 사는 것은 오늘의 계획이 아니라고 설명해야 한다.

아이는 언제나 부모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흥미롭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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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각자 권리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결정은 타협인 셈이다.

하루 4번 먹이기(아침, 정오, 오후 4시, 저녁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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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각자 내면에 있는 모터에 의해 각자의 속도로 이정표로 도착하는 것이다.

그저 재미를 위해서다. 빈의 수영강사처럼 프랑스 부모들은 '일깨우기'와 '발견'의 힘을 믿는다.

철학의 차이

수영장 = 물을 '발견'하게 하는 것

체육관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목적 = 운동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신체를 '발견'하게 하는 것

"아이들은 즐겁고 신나게 세상을 발견해야 한다."

일깨우기는 아이를 맛을 포함한 여러 가지 감각으로 안내하는 것을 말한다. 매번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거나 부엌에서 날아오는 저녁식사 냄새를 맡거나 담요 위에서 혼자 놀다가도 이런 경험이 찾아올 수 있다.

스스로 즐길 줄 아는 교양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어린시절은 얼마되지 않잖아요.

인위적으로 인지발달을 돕거나 학업과정을 앞당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깨우기는 자기신뢰와 차이에 대한 아량 같은 내면의 심리적 자질을 단련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을 뿐이다.

아이들을 다양한 맛, 색, 풍경에 노출시키는 것은 그저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함이라고 여기는 부모도 많았다.

"즐거움이 곧 사는 이유 아니겠어요?"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데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의 욕망은 쉽게 만족되는 만큼 끊임없이 커질 것이고, 조만간 부모는 무기력에 빠져 어쩔 수 없이 거절을 하게 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거절을 받은 아이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보다 더한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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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늘 약간은 엄하게 구는 경향이 있어요. 그냥 놔두면 두 단계는 퇴보하게 되는 몇 가지 영역이 있거든요.

파니의 카드르(이상적인 카드르는 부모가 어떤 부분에는 매우 엄격하면서도 다른 것에 대해선 매우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 영역은 식사, 취짐, tv 시청이다.

*카드르 : 틀 혹은 구조. 이상적인 프랑스 양육을 묘사하는 시각적 이미지. 아이들에게 견고한 제한을 두되 그 안에서 커다란 자유를 주는 양육을 말한다.

그밖의 다른 일들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두지요. 파니는 카드르 내에서도 얼마간의 자유와 선택권을 준다.

tv 시청의 경우 tv는 못보게 하고 dvd는 허락해요. 아이에게 dvd를 고르게 하죠. 모든 일에 이런 원칙을 적용하려고 해요. 아침에 옷을 입을 때에도 딸아이에게 말하죠. 집에서는 네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어. 여름에 겨울옷을 입는다 해도 괜찮아. 하지만 함께 밖에 나갈 때는 함께 결정하는 거야. 지금까지는 꽤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아이가 13세가 되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죠.

카드르의 핵심은 아이를 속박하는 게 아니다. 아이에게 예측가능하고 일관된 세계를 만들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파니 역시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카드르가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되죠. 카드르가 있으면 자신감이 생겨요. 아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도 그걸 느끼죠. 카드르가 있으면 아이는 교훈을 배우고 권위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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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그림처럼 얌전한 아이를 높이 샀지만, 현재는 얌전하면서도 깨어 있는 아이를 높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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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말을 이해시키기만 한다면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거기에는 레스토랑에서 바르게 식사하는 법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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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토는 신체적 증상의 상당수엔 심리적인 기원이 있다고 여기고,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녀는 입버릇처럼 어린 환자들에게 묻곤 했다.

조금 더 큰 아이들에게는 치료를 해줄 때마다 돌멩이 같은 물건으로 직접 치료비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독립심과 책임감을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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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아기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했다. 달래려는 게 아니라 아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아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아기에게 다가가서 '왜 여기와 있으며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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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율성, 그리고 더 큰 성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체계적인 내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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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것도 부모에게는 돌연한 고집으로만 보이지만, 아이로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함께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일들로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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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아서 퇴원을 해 집으로 오면 아기를 안고 집 곳곳을 구경시켜준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은 적 있다. 아기에게 지금 뭘 하려는지 말해준다는 부모도 있다.

"지금 너를 안고 있어, 기저귀를 갈고 있어, 목욕을 시키려고 준비하고 있어.'

그저 안심시키기 위한 차분한 소리가 아니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아기도 작은 인간이므로 부모는 아기에게 예의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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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의 형태나 양보다는 '양육의 질'이 훨씬 더 중요한 아동발달의 예측지표다. 아이들은 교양 있고 풍요로운 환경, 책과 놀잇감이 많은 환경, 도서관 방문과 같은 '정신고양의 경험'이 많은 환경에서 더 잘 성장한다.

주 30시간 이상을 탁아소에서 보내느냐, 집에서 엄마와 보내느냐는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민감성, 양육자가 아이가 세계를 경험해가는 과정을 얼마나 잘 맞춰주는가다.

"아이의 요구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아이의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와 징후에 반응하며 아이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해주는 온화하고 지원적이고 관심을 쏟아주는 양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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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장난감이 많아도 가족 공용 공간까지 침범하게 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저녁이면 장난감을 정리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음을 깨끗이 비우듯 장난감을 정리한다.

낮 동안은 자기 아이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이웃의 사미아 역시 딸아이가 잠자리에 들면 일체의 아이 물건을 정리한다고 한다. "장난감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아이의 우주는 아이 방에 있으니까요."

물리적인 공간만 분리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좋은 엄마도 아이를 돌보는 것에서 얼마간 자유로워야 하고, 그런 이유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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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는 전업주부 역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유아를 탁아소에 맡기는 일을 당옇나다고 여긴다. 그 시간에 요가 수업을 듣거나 미용실에 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전업주부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다니지 않는다. 자기를 돌볼 충분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마치 전혀 다른 종족으로 보일 정도다.

물리적인 시간만 허락하는 게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아이와의 분리를 허락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부모라는 사실이 다른 역할까지 잠식해서는 안 된다는 게 프랑스 사회의 지배적인 메시지다. 파리에서 만난 여성들은 엄마가 아이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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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서 행복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에도 왕성한 호기심을 품으며 위기상황에도 지혜롭게 대처하지만, 완벽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는다. .

헌신적인 엄마지만, 동시에 아이와 독립적으로 죄책감 없이 '자유'의 순간을 즐기고자 한다. 섹시하지만 편안해 보인다. 아이가 행복하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여자로서 행복한 모습이다. '엄마'이기를 거부하고 '여성'으로만 부각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엄마와 여성의 역할이 잘 융합돼 있다. 그 둘이 동시에 보이지만 둘은 서로 갈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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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엄마는 없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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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엄마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ㅎ야 하는가? 아이가 설령 아침에 혼자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느라 시간을 다 써버려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데 꽤나 흡족해한다. 스웨터를 거꾸로 입거나 바짓가랑이가 서로 꼬여 있거나 동네 골목을 휘젓고 다녀도 무척 행복하다. 아이가 엄마를 졸졸 따라 시장까지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결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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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빈의 발달속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며,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의 즐거움은 기꺼이 희생했다. 반면 프랑스 엄마는 자기 딸이 온전히 스스로 자신을 '일깨우게' 놔두는 데 만족했다. 딸 역시 그런 엄마로부터 철저히 독립적이었다.

바로 이 풍경이 그동안 내가 목격한 프랑스 엄마들의 신비할 정도의 차분한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프랑스 엄마들은 이런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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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눈높이가 높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섹시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며 매일 저녁 집에서 요리한 요리를 내놔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죄책감을 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5개월 된 딸을 처음으로 크레쉬에 맡기고 나올 때의 심정을 기억한다. "아이를 놔두고 나오는 건 속상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있었어도 속상하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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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다'는 확신

지나친 관심과 걱정으로 아이들을 짓누르고, 엄마와 아이의 욕망이 뒤얽혀 끔찍한 관계의 융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아이는 엄마의 개입 없이 스스로 내면의 삶을 일구어가야 한다.

"엄마의 유일한 삶의 목표가 아이 하나라면, 아이로서도 숨이 막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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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르넬은 읽기는 가르치지 않지만 말하기는 확실하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테르넬의 핵심목표 중 하나다.

'프랑스어를 풍부하고 조직적이며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잘 전달해야 한다.'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것은 곧 분명하게 사고할 줄 아는 것과 상통한다. 어법을 익히면 관찰, 질문, 의문 등을 더욱 합리적으로 해내며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다. 논리적인 사고를 시작하면 추론의 맛도 알게 된다. 셈, 분류, 정렬, 묘사 등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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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메르시, 봉주르라고 말하는 법을 꼭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1살 때부터 하루 15번은 가르쳤어요.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해야 해요. 인간관계의 첫 부분이니까요."

에스테는 벌을 주겠다는 위협을 주어서라도 봉주르를 고집한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인사는 아니지만 암송하듯이 하면 습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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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는 상대의 인격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정하면서도 분명한 말투로 봉주르라고 인사한 뒤 상대방의 태도가 눈에 띄게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다. 내가 쓰는 억양이 완벽하진 않지만 서로 교양 있는 대면을 하게 될 것이라는 신호다. 인사를 해야 그곳에 존재할 자격이 있다. 내 집에 들어오는 어른이 나를 인정해야 하듯, 내 집에 들어오는 아이도 나를 인정해야 한다.

"인사는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프랑스에선 어린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아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마테르넬의 아이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선생님에게 인사하기, 질문에 대답하기,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의 말 건네기,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지 않기 등을 포함해 교양과 예절을 이해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봉주르를 시키는 것은 어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이 세상의 감정과 요구를 가진 사람이 자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기적인 아이가 되지 않게 해주죠. 사람들을 못 본 척하고 인사하지 않는 아이는 비눗방울 속에 갇혀 있는 것과도 같아요. 그런 아이는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기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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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와 어울리는 걸 원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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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결말이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다는게 메시지다. 삶은 늘 혼돈 투성이고 복잡하다.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양쪽 속성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 엘리에트는 으스대지만 동시에 무척 위트 있는 아이다. 알리스는 피해자이지만 스스로도 그걸 자초하는 구석이 있다. 엘리에트와 알리스의 작은 결함은 계속 돌고 돌 것이다. 우정이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걸 30대에 와서야 이해하지 않고 4살 때 알았더라면.

 

프랑스 동화책의 등장인물들은 모순인 속성을 지닐 때가 많다. 완벽한 공주 시리즈에서 주인공 주에는 선물을 열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는 아이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에선 천연덕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선물을 준 사람에게'메르시'라고 말한다. 미국식이었다면 조에는 지나치게 솔직한 결함을 극복하고 진짜 완벽한 공주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동화책은 좀 더 현실에 가깝다. 조에는 자신의 성격이 지닌 양면성 때문에 늘 고군분투한다.

프랑스 동화책은 어린아이들의 욕망, 부끄러움, 우정, 사랑을 진정어린 것으로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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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녀들은 데이지 꽃잎을 떼며 '그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반면,

프랑스 소녀들은 '그는 나를 조금 사랑한다, 많이 사랑한다,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미친 듯이 사랑한다,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면서 애정의 미세한 종류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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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지니는 매년 남편과 단둘이 10일 동안 여행을 간다. 이는 협상불가의 신성한 영역이다. 4~14세까지의 그 집 아이들은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외갓집에 가 있어야 한다. 비르지니는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부 사이에 정이 돈독해지는 만큼,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 여행이 끝나고 가족이 다시 모이면 훨씬 더 화기애애해진다고 한다.

내가 아는 프랑스 부모들은 가능할 때마다 어른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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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남편)은 내가 세운 '복잡하지 그지없는 규칙들' 때문에 자기는 무능한 기분이 든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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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자들은 자기들이 열악한 취급을 받는다고 여기기보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는 식탁보를 구입하고 소아과 검진 일정을 외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는 다른 종족쯤으로 본다는 말이다.

'프랑스 여자들은 양성간의 차이를 더 많이 인정하는 것 같다. 남자가 여자와 똑같이 꼼꼼한 주의력과 기민함을 갖고 태어났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자기 배우자의 실수를 얘기하면서, 그가 얼마나 사랑스럽게 서투른지 비웃는 투로 말한다.

"크게 신경 쓰지 말아요. 남자들은 그냥 능력이 안되는 거예요. 우리가 훨씬 우월해요!"

이런 접근 방식은 긍정적 순환을 만들어낸다. 아내는 남편의 단점이나 실수를 꼬집어 잔소리를 퍼붓지 않는다. 남자들은 기가 꺽이지 않는다. 집안일의 세부사항을 '너그러운' 아내의 관리와 명령에 따라 수행하고 아내의 업적을 칭송한다.

칭찬의 선순환은 힘든 상황을 한결 헤쳐 나가기 쉽게 만들어준다.

"남편은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잘하는데 나는 도저히 못하겠어!'" 미국 판 강경 페미니즘과는 양상이 다르나. 하지만 상황을 한결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로랑스는 매주 토요일 오전 합기도를 배우러 가라고 남편을 떠밀었다. 그 뒤로는 남편이 한결 느긋해졌다고 한다. 로랑스는 자기가 설령 집안일을 조금 더 하게 되더라도 남편이 유쾌하고 차분해지는 쪽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프랑스 여자들은 집안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더 많은 자유 시간을 만들어냄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도 능숙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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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같은 기쁨, 그 단순한 희열이 부부 사이에 필요하다.

"그래, 우리 사이에는 '나 이 바게트 정말 좋아!'가 정말 많이 필요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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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서는 아이의 음식 까다로움에 조건부로 항복하라고 조언한다. 어른들은 식탁에서 선택의 자유를 한껏 누리면서 아이한테만 주는 것만 먹으라는 주장은 본래부터 부당한 면이 있다.

프랑스 아이들은 보통 식사시간과 구테에만 먹는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에게 도전적인 요리를 권한다.

프랑스 부모들은 의도 면에서나 실천 면에서 '채소'를 전혀 다르게 대한다. 아이들에게 각 채소의 맛을 설명해주고 샐러리나 부추 같은 '먹기 힘든 채소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게 평생 지속될 관계임을 알려준다.

"아이가 당근 본연의 맛을 알길 원해요. 그 다음엔 호박이죠."

아기가 거부하더라도 그 음식을 계속 주어라. 먹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새로운 음식을 소개하는 게 어렵고 아이가 서너 번 이상 그걸 거부해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먹지 않더라도 부모가 당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라. 찌고, 오븐에 굽고, 양피지에 싸고, 그릴에 굽고, 간단하게 요리하고, 소스와 양념을 첨가하는 등 여러 시도를 하라. 아이는 다른 색깔, 다른 질감, 다른 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음식에 대해 아이에게 말해줌으로써 안심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 채고를 보여주면서 아삭거릴까? 베어 물 때 소리가 날까? 무슨 맛이 날까? 입안에서 어떤 느낌이 들까? 등등 다양하게 묻는다.

또 아이의 눈을 가리고 이미 먹어본 음식을 준 뒤 어떤 음식인지 알아맞히는 게임도 있다.

계속 시도하면 결국엔 좋아진다.

딸아이가 얼마나 많이 먹느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접시에 있는 음식을 최소한 한입씩은 먹어야 한다.

"모든 걸 한 번씩은 맛봐야 해요." 이 규칙은 거의 모든 엄마들에게 동일했다. 아이가 먹는 음식은 부모가 먹을 음식과 같다. 선택도 허락되지 않는다. "뭐 먹고 싶으냐고 물어본 적은 없어요. 그냥 오늘은 이걸 먹을 거라고 말하죠. 다 먹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지만 식구들이 모두 같은 음식을 먹죠.

음식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치즈 맛에 대한 토론

식사시간을 짧게 하는 것. 파니는 딸아이가 일단 모든 음식을 고루 맛보기만 하면 식탁에서 일어나도 좋다고 허락한다. 식사시간은 어릴수록 30분을 넘기지 말아라. 커갈수록 자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식사시간도 조금씩 늘어난다.

메뉴의 균형. 단탄지채소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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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케이크를 굽고 요리를 해요. 아이들용 요리책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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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스는 주 1회 정도는 두 딸에게 TV를 보면서 저녁을 먹도록 허락한다. 주말이나 휴가기간에는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해지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카드르가 찾아올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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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것에 대한 접근법. 아이들의 식단에서 단것을 모두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드르 안에 단것을 끼워 넣는다. 단것이 삶의 정상적인 한 부분이기 때문에 사탕이 손에 들어오자마자 막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처럼 미친 듯이 입에 몰아넣지 않는다. 주로 생일파티, 학교 행사, 특별한 경우에 사탕을 먹는다. 그리고 그때는 맘껏 먹는다. 주중에는 먹는 것을 엄격하게 조심하고 주말에는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는 비르지니가 떠올랐다.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절제와 자유가 공존해야 하듯, 아이들 역시 비정상적 식탐에 빠지지 않으려면 규칙과 일탈이 공존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는 부모가 결정한다.

엘렌은 추운 날이면 아이들에게 핫초코를 준다. 바게트와 함께 아침식사로 주기도 하고 쿠키와 함께 오후 간식으로 주기도 한다.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한 보상이죠. 아이들도 초콜릿을 먹고 활력을 얻을 거예요."

드니스도 매일 저녁 딸에게 건강한 식사를 만들어주지만, 아침에는 보통 빵과 과일, 초콜릿을 준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양이 엄청난 것은 아니다. 초콜릿 작은 조각(작은 그릇에), 초콜릿 음료, 초콜릿 빵 한 조각 정도가 고작이다. 아이들은 그걸 행복하게 먹고 더 먹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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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는 구테(간식)로 설탕이 들어가는 케이크나 쿠키를 내놓는다. 그러나 저녁으로는 초콜릿이나 풍성한 후식을 주지 않는다. "저녁에 먹는 음식은 평생 가거든요." 파니는 설명한다.

파니는 저녁식사 후에 보통 신선한 과일이나 과일 콤포트(애플소스에 여러 과일을 으깨 섞은 것)를 준다. 플레인 요구르트에 잼을 섞어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프랑스 부모들은 식사시간에 아이들에게 견고한 경계를 정해주고 동시에 그 경계 안에서 자유를 허락한다. "식탁에 둘러 앉아 모든 것을 맛보게 하죠. 하지만 그릇을 비우라고 강요하지는 않아요. 다만 모든 음식을 적어도 한 번씩은 맛봐야 하고 부모와 함께 자리에 앉아 있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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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 과일

2. (과일 먹는 동안 준비) 토스트, 시리얼

아침에는 주스를 먹을 수도 있지만 점심과 저녁에는 물만 마셔야 한다. 깨끗한 물을 마시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점심

1. (가장 배가 고플 때) 채소를 먼저 준다.

2. 전채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야 비로소 메인 요리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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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것도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바람직하지 못한 존재가 아니다. 적당히 주기 때문에 빈도 이제는 사탕에 탐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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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라는 말을 더욱 강하게, 힘을 실어서 진심으로 믿으며 해야 해요." 목소리 톤이 중요해요. 아이는 이 일로 상처 받지도 않을 것이다.

'크게 부릅뜬 눈' 무서운 부엉이상 ㅋ

크게 부릅뜬 눈이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관계를 구축하려면 엄격함만이 아니라 자율과 선택을 주는 융통성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마들렌은 말한다.

"아이에게 약간의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성격이 보이거든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제한을 정해주는 것은 부모이다. 중요한 몇가지 일에만 엄격해야 부모가 더욱 합리적으로 보이고 그만큼 아이들도 부모의 말에 더 잘 따르게 된다. 잘못된 행동마다 일일이 엄격하게 반응하고 취급한다면 아이들이 어떤 게 더 중요한 지 알 수 없죠.

협상 불가 영역 : 인사(봉주르, 오르부아, 메르시), 부모나 다른 어른들에게 공손한 태도로 말해야 한다. 물리적인 공격성도 안됨

빈은 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어."라고 신나게 떠들어댔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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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즐거워야 아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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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안 돼. 이제 너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거야. 너는 잘 시간이고, 지금부턴 내 친구들과 보낼 어른의 시간이야. 너한텐 너의 시간이 있고, 어른에겐 어른의 시간이 있어. 그러니 가서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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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의사가 끼어들었다. "아이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마세요. 그냥 해야 할 일이니 '저울에 올라가라.' 이 한마디면 됩니다. 의논 같은 건 없다고 말하세요.

부모가 자신감을 갖고 아이를 체중계 위로 올라가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아이가 불안해한다. 그냥 이렇게 하는 거다,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는 거라고 아이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어요. 간단한 행동이지만 모든 일의 시작이기도 하죠.

설명이 필요없는 확실한 일들. 아이 몸무게를 재야 하면 체중계에 올라가야 하는 거예요. 그걸로 끝! 끝이라고요. 그는 아이가 왜 칭얼댈 때 거기서도 가르칠 게 있다고 했다. "살다보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늘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지는 않지요. 그걸 아이가 깨닫게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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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권위. 부모가 권위를 가지려면 대부부의 시간은 '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 언제나 안 된다고 금지만 한다면 권위주의죠. 부모는 어쩌다 한 번만 금지를 해야 합니다. 금지를 통한 순종은 깨지기 쉽고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뭔가를 할 때마다 물어보도록 가르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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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금지할 때는 항상 그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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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이 없으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욕망에 소모되고 만다. 프랑스의 부모들이 카드르를 강조하는 이유는 경계가 없으면 아이들이 자기 욕구에 제압당해버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카드르는 내면의 소용돌이를 억누르고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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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세기'의 원리는 아이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고 아이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아이는 순종 장면에서 주연을 맡도록 용인되어야 하는데, 이를 통해 그럴 태세를 갖출 시간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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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니?"

선생님은 다정하게 물었다. 조이의 떼쓰기를 끔찍한 어린애의 변덕으로 보지 않고, 작은 이성적인 존재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바라보았다. 1~2분이 지나자 조이는 말과 몸짓으로 사물함에 있는 모자를 쓰고 싶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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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주고 마지못해 반대하라. 그러나 거절은 취소할 수 없도록 결정적으로 하라. 어떠한 애원에도 움직이지 마라. '안 돼'를 내뱉었으면 아이가 대여섯 번 힘을 쏟더라고 철의 장벽처럼 버텨라. 결국에는 아이도 더 이상 뒤집으려는 이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도 원하는 모든 것을 얻지 못하게 되어도 참을성 있게, 한결 같게, 차분하게, 체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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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는 4세부터 참여하는 캠프 '콜로니 드 바캉스(방학촌)'가 수백 곳이나 있다. 아이들은 7~8일씩 시골에 가서 조랑말도 타고 염소 먹이도 주고 노래도 배우며 자연을 '발견'한다. 조금 더 크면 연극캠프, 카약캠프, 천문캠프 등 좀 더 전문적인 방학촌으로 간다.

독립을 허용하고 내면의 회복탄력성과 자립을 강조하는 것은 프랑스 양육에서 큰 부분이다. 프랑스에선 이걸 '오토노미(자율)'라고 한다.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자율을 주고자 한다. 거기엔 단체여행 같은 물리적인 자율도 있고, 부모나 어른의 칭찬 없이도 자존감을 키우는 정서적인 분리도 포함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안전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찍부터 자율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 사랑 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공간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신하고 매일매일 자신만의 탐험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보다 자유를 허락받을 필요가 있다.

돌토는 아이 스스로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안전한 상태에서 혼자 남겨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개별적인 존재로 아이를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토의 시각으로 보면 아이가 6세만 되어도 집안이나 사회에서 자신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직접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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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질 하지 않는 문화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자립감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기 보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운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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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 스스로 뭔가를 해냈을 때, 그걸 잘 해냈을 때 아이 스스로 자신감을 느낀다. 부모가 칭찬해줘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말을 시작한 뒤로는 뭐든 말을 내뱉었다는 이유로 칭찬하는 일은 없다. 재미있는 말을 했을 때나 말을 잘했을 때만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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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모들은 자녀가 '언어로 자신을 잘 방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이가 뭔가 할 말이 있을 때 잘 들어준다. 하지만 아이라고 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뺏거나 상대방을 계속 붙들어놓을 순 없다. 말이 장황해지면 가족이 말을 끊는다. 그래서 아이는 말하기 전에 자기 생각을 잘 가다듬는 습관을 들인다. 아이들은 빨리, 그리고 흥미롭게 말하는 법을 배운다.

프랑스 아이들이 재미있는 말을 하거나 정답을 말해도 어른들은 호들갑을 떨며 반응하지 않는다. 모든 걸 장하다고 부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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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역할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부모에게 알린다. 반면 아이가 적응을 잘해나가면 더 이상 말을 해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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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다'는 칭찬이 너무 잦으면 아이가 긍정적인 평가에 중독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이들은 만족감을 얻기 위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또 뭘 하든 칭찬이 돌아온다면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어떻게 해도 칭찬은 받을 테니 말이다.

'지나친 칭찬은 아이의 동기를 왜곡한다. 아이들은 본질적인 즐거움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칭찬을 받기 위해 뭔가를 하기 시작한다. 칭찬을 많이 받은 학생이 대학에 가면 '모험을 꺼리고 자율의식이 부족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점수를 받느니 차라리 수강을 취소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성공하지 못할까봐 뭔가에 헌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아이는 끊임없이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들 것이다. 무엇이 정말 즐겁고 무엇이 가짓인지 내면의 판단기준이 망가질 수도 있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닐 수 없으며, 결국 앞으로 경험할 모든 거절과 실망으로부터 지켜줄 수는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부모가 믿어줄 때 아이들은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고 칼을 쥐어주고 수박을 자르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녁식탁에 깨질 수도 있는 접시를 나르게 하는 정도에 불과할지라도 아이들에게 약간의 도구를 허락한다. 작은 성취 후에 아이들은 한결 차분해지고 더욱 행복해한다. 자율이 아이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 중 하나라는 돌토의 말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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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은 거친 세상에 풀어놓거나 버리라는 게 아니다. 다만 아이는 부모의 야심을 위한 창고가 아니며 부모가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취향과 즐거움, 삶의 경험을 지닌 개별적이고 유능한 존재다. 심지어 자신만의 비밀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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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모들에게 자녀들에게 가장 바라는 바가 뭐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처지를 편안하게 생각하기'나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내기' 같은 것을 꼽는다. 아이가 자신만의 취향과 견해를 길러나가기를 바란다.

프랑스 부모들은 오히려 아이가 지나치게 유순할까 걱정한다. 아이다운 성격을 제대로 갖추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바탕으로 경계를 존중하고 자제력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과 카드르가 공존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체적 시선으로 공부하고 있느냐?
"Was ist deine Theorie?" 네 이론은 뭔가?

독일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아주 특이한 현상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작은 카드에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학교 앞, 노점상들도 다양한 크기의 카드를 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드를 정리하는, 알파벳이 순서대로 적힌 다양한 모양의 상자도 팔고 있었다. 나무, 가죽, 플라스틱 등 모양과 정리도 참 다양했다.

독일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자신이 공부하며 요약한 카드와 그 카드를 정리하는 카드 박스가 꼭 놓여 있었다.

한국식 학습 방법의 문제는 바로 노트에 있었다.
내가 독일에서 배운 것을 하나로 표현하라면 바로 이 편집 가능성이다. 카드 맨 위에는 키워드를 적고 그 밑에는 그것과 연관된 개념(연관 검색어)을 적고, 출처와 날짜 등을 차례로 적는다. 그리고 카드의 앞,뒤장에 그 내용을 빼곡히 요약한다.

이렇게 모인 카드는 주로 알파벳순으로 정리한다. 내가 쓰려는 논문의 순서에 따라 정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독일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공부한다. 그러나 한국 학생이 따라갈 수 없는 결정적 차이는 '자기 생각'이다. 독일 학생들은 모은 카드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시 편집한다.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쓰는 것이다(노트는 재구성할 방법이 없다). 카드 목록을 재구성하며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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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편집에 따라 인간 심리는 달라진다!

한국에서의 토론식 수업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장소를 바꿔 수업을 해보니 학생들의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따뜻한 봄날 잔디밭에 나가 야외 수업을 해보니, 수업의 양상이 강의실과는 전혀 달랐다. 나무 그늘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은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꺼냈다. 이제까지 내가 알던 그 강의실의 학생들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강의실의 구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게 되면,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도 학생들 간의 소통은 계속된다. 수업 내용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표정과 자세를 언제든 살펴볼 수 있다(시선 공유).

세미나실의 책상 배치가 교육의 내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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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대학의 마이어스-레비 교수는 천장 높이를 30cm 높일 때마다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관점이 거시적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반대로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에서는 사물을 꼼꼼하게 바라보게 되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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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창조적인 행위는 놀이.

사무공간도 즐거워야 창조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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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록세미스의 상호작용의 내용을 결정하는 사람 간의 거리

1. 친밀한 거리 : 45cm 이내

2. 개인적 거리

3. 사회적 거리 : 120~360cm

4. 공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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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끼리는 마주 보는 것보다 모서리를 사이에 주고 앉는 것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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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된 규율을 익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몸으로 배우는 결코 잊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법을 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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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력과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과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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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스스로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진리를 강요할뿐, 일리의 해석학이 빠져 있다.

반면, 스티브 잡스의 내러티브는 상호작용적이다. 편집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낼 때만 의미 있다. 남이 만들어주는 의미는 전혀 의미 없다. 진리를 계몽하던 시대는 지났다.

듣는 이로 하여금 '주체적 편집의 기회(의미 편집)'를 제공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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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티의 핵심을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라고 규정한다.

근대 후기의 성과 사회는 각 개인을 끊임없는 자기 착취의 나르시스적 장애로 몰아넣는다.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발적 자기 착취'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일원론적 발달과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주체는 죽을 때까지 안정된 자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후기 근대적 주체의 미완결적 성격은 자신을 태워버리는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독일식 개인 : ~을 해야만 한다. ~을 해서는 안된다. 타율적 규제, 억압, 강제로 인해 주체는 끊임없이 불안함을 느낀다.

미국식 개인 : 긍정성,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미국식 개인에서 나타나는 능력의 무한 긍정은 독일식 개인의 금지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고 위헙하다는 것이 한병철 교수의 주장이다. 끝 모르는 자기 착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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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가 쌓이면 한가하게 다 읽을 수 없는 노릇이다. 발췌해서 내가 읽고 싶은 것만 찾아 읽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읽고 싶은 것이 뭐냐는 거다.

내 질문이 없으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이다(물론 정말 재미있는 책은 다 읽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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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자식에게 엄마는 세상이고 우주이며 신입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불안한 여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는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그 마음을 지지대 삼아 잘 자랍니다.

세 살 이전까지는 밖에서 주어지는 대로 심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어요. 전적으로 부모 책임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엄마 마음이 무조건 편안하고 부부가 화합해야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인연법으로 볼 때 이것은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대로 태어나면 좋지 않아 자연스럽게 유산이 되는 거예요.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엄마가 될 준비를 차분히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그러다 보면 마음이 바뀌면서 인연도 달라집니다.

엄마가 될 사람은 누구보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세상의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다 안믿어 줘도 우리 부모만은 나를 믿어준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문제 삼아도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자식이라면 이렇게 부모를 탁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기는 자아가 형성되는 중요한 시점이므로 적어도 세 살 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해요. 그래야 내 자식입니다.

아이가 할머니 품에서 자라고 싶겠어요, 엄마 품에서 자라고 싶겠어요? 당연히 엄마 품에서 자라고 싶겠지요. 돈으로 엄마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보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엄마든 아빠든 반드시 부모가 키워서 아이의 마음이 안정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타면 아이가 불안해해죠.

자기가 직장에 다니면서 자아실현하고 싶어서 다니는 것이고, 가정을 위해 직장을 다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 돈 문제예요. 아이를 사랑하면 세 살 때까지는 방도 없이 텐트를 치고 살아도 엄마가 애들을 키워야 합니다.

'애 키울 동안 20평 살다가 10평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전적으로 책임지고 맡아서 키우겠다.'

아이에게는 기른 사람이 엄마예요.

아이를 돌봐야 할 시기에 안 돌보면 애들이 엄마 고마운 줄 모릅니다. 남편도 아내 고마운 줄 몰라요. 그러면 나중에 힘들게 직장다니며 일한 본인만 억울하고 괴롭지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이가 태어나서 3년까지는 엄마가 키워라." 이것은 아이와 엄마의 마음이 고통 받는 것을 염려해서 하는 조언입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놓고 직장을 다니다보니 애들에게 심리적 불안 현상이 일어나요. 이런 아이가 자라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고, 증상이 심하면 자살까지 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 키우는 사람은 마음속에 분노가 있으면 안 돼요. 그 부정적인 마음이 아이에게로 옮겨 가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공손하기를 원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공손하면 됩니다. 남녀로서는 부부지간에 평등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엄마는 자녀의 모델입니다. 엄마가 밥 먹으면 따라 밥 먹고, 욕하면 따라 욕하고, 성질 내면 따라 성질 내고, 미워하면 따라 미워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아무리 좋은 것을 해주어도 부모가 화목한 것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부모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세상에 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게 가장 좋아요. 아이와 함께 방청소도 하고 옷도 같이 개는 거예요. 못을 칠 일이 있으면 못 통을 들게 하고, 청소할 일이 있으면 걸레 쥐고 따라다니게 하는 게 배움이에요.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따라 배우게 하는 겁니다.

엄마는 아이를 신경질적으로 대하거나 화를 내서는 안되고, 모범을 보이면서 진득하게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당당하게 크려면 엄마가 심리 불안이 없어야 해요.

어릴 때부터 종의 습성이 들면 비굴해지고, 주인의 습성이 들면 당당합니다.

부모가 화목해서 아이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부모가 모범을 보여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막으면 자식은 반항을 하지만 그렇다고 자립도 못합니다. 자립하려는 것을 막았으니 반항심은 생기는데 막상 어떻게 스스로 서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부모에 대한 고마움은 없고 원망만 가득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에요. 어떤 일이든 지켜보다가 세 번, 네 번 문제가 반복되면 그때 주의를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시행착오, 즉 실패한 경험을 갖게 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 자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해요.

아이가 어릴 때는 정성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게 사랑이예요. 사춘기의 아이들은 간섭하고 싶은 마음, 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지켜봐 주는 게 사랑입니다. 성년이 되면 부모가 자기 마음을 억제해서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랍해서 할 때 스스로 서게 하고, 스무 살이 넘으면 무조건 집에서 쫓아낸다는 생각으로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도록 강인하게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해요. 그런 다음 자식이 스무 살 넘으면 자식 인생에 일절 간섭을 안 해야 합니다.

"아들을 낳아서 남의 머슴살이를 시키면 부모를 봉양하며 효자가 되고, 논 팔아서 대학 공부를 시키면 불효자가 된다."

자식이 "엄마, 저 무슨 일 하면 좋겠어요?"하고 물어요. 이때 "아이고, 네 인생 네가 살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나도 지금 이렇게 헤매는데 내가 너의 인생에 어찌 간섭하겠냐? 공부 많이 한 네가 잘 알지. 엄마는 모른다. 그런거." 이렇게 정을 딱 끊어 버려야 해요.

겉으로 보이는 조건을 갖춰 주려고 애쓰는 대신 우리 아이에게 어떻게 마음의 안정을 줄까, 어떻게 사람답게 자라도록 도울까,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쓸 때 진정한 부모라 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는 자기 마음대로 해보고 싶어하는 시기인데, 엄마가 그걸 무시하고 가두려 드니까 도망가는 거에요. 아이가 게임에 빠지는 것도 하나의 도망이고 저항이에요. 엄마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봐야 안 먹히니까 게임에 빠져드는 겁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엄마가 믿어 주고 "괜찮아, 너는 잘될 거야" , 그래, 너는 잘하고 있어. 엄마는 믿어." 이렇게 말해 줘야 합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는 잘못임을 알려주고 지적해야 합니다.

1.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일

2.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일

3. 여자를 사랑할 때 성추행이나 성폭행처럼 상대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일

4. 거짓말을 하거나 욕하는 일

5.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일

"내가 알아서 할게"하면 기뻐해라.

아빠가 왜 늦게 들어오느냐고 야단치면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론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럼 아빠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을 다 보고 있기 때문에 야단을 치면 항의하다가, 더 야단치면 휙 일어나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고는 엄마가 따라 들어올까 싶어 문을 잠가 버려요. 일종의 저항이에요. 힘이 있으면 같이 대들 텐데, 아직 힘이 없다 보니까 이런 방식으로 저항하는 겁니다. 이렇게 충돌하면 할수록 교육 효과는 없어집니다.

남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는다고, 거기에만 매달려서 아이가 죽을지 살지도 모른 채 아이를 벼랑 끝으로 밀고만 있어요. 이것은 정말로 아이의 인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 아닙니다.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 조정되는 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아이가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뒤에 주인이 따로 있으므로 상담은 아무 소용이 없지요.

엄격한 기준을 정해 주고 나머지는 내버려두세요. 그래서 아이가 엄마에게서 억압을 느끼지 않고 마음을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아이가 맞고 왔다면 흥분하지 말고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세요. 부모가 흥분하면 보복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씨앗을 심어 주는 겁니다.

"그래, 친구가 때렸구나, 아이고 쯧쯧. 그런데 어릴 때는 그렇게 싸우기도 하는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 친구가 뭔가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집에서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랬나 봐. 별일 아니야."

아이가 싸우고 돌아왔다면 친구들과 싸운 걸로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애들 싸움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괜찮아. 넘어진 것하고 똑같으니까 툴툴 털고 일어나렴." 이렇게 위로해 주면 아무 문제 없어요.

'엄마는 네가 지체부자유자라도 너를 사랑하고, 공부 못해도 너를 사랑하고, 사고 쳐도 너를 사랑한다.'

"엄마는 너를 사랑해. 그리고 언제나 네 편이야." 이렇게 자주 격려의 말을 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큰애가 동생하고 싸운다면 야단치는 대신 "또 둘이 싸웠구나.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이렇게만 말하는 게 좋아요. "언니니까 참아라" 라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딸이 혼자 자랐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 사람과 부딪치는 것을 힘겨워 하고, 함께 어울릴 줄을 모르잖아요. 그렇다고 집안에만 놔두면 인간 관계를 전혀 맺을 수가 없어요. 이런 경우에는 수행하는 사람 열 명, 스무 명 있는 곳에서 한 백일 동안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방에서 같이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 저녁까지 일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에 참여해서 조금씩 자생력을 키워 나가는 것도 좋아요.

자식이 지금까지 너무 고립된 생활을 해서 바깥세상을 모르니까, 엄마가 다녀보고 먼저 경험해 보는 게 좋아요. 엄마가 먼저 체험해 보고 "내가 해보니까 이러저러한 점이 괜찮더라, 한번 해봐라."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세상과 연결해 주는 겁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어 주고, 자생력을 찾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사춘기 때 간섭하지 말고 지켜봐야 합니다. 혼자 하려고 할 때 혼자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또 공부 안 하고 연애하는 것도 좋아해야 해요. 두 번, 세 번 연애하고 상처도 입어야 상대에 대한 이해가 생깁니다.

자식이 강아지처럼 순순하게 말 잘 듣는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때가 되면 부모 품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가 불행하면 아이도 불행합니다.

만약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면 엄마가 고생하는 걸 자식이 보도록 하는 게 아이의 정신 건강에 좋아요. 곁에서 돌봐주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기를 버리지 않고 혼자 몸으로 애써서 키우려 한다는 걸 아이들도 안다면 오히려 상처받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하고 느끼는 거예요. 그게 가장 중요해요.

"엄마 나 공부하기 싫어요."라고 했을 때 "그래, 그럼 좀 놀아라(놀자)." 이렇게 받아 주면 아이도 공부에 대해 심하게 거부감을 갖지 않겠지요. 그런데 "그 성적 가지고 지금 놀 때야?" 하면서 자꾸 야단치거나 강요하다 보면 점점 더 공부가 싫어지는 거예요.

아빠가 1년 정도 직장을 쉬면서 농사 짓고,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살든지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여행을 하는 것도 좋아요. 무전 여행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녀보고, 다른 나라도 다녀보는 거예요. 한 3개월만 고생하며 여행하면 아이들은 달라집니다.

자기 발로 서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데 오늘 우리 인생은 그렇지를 못해요. 그냥 세상의 흐름에 따라 굴러다니고 있어요. 마치 홍수가 나면 쓰레기가 물에 휩쓸려가듯이.

늦게까지 공부를 하면 "잠이 부족하면 알던 것도 생각이 안 날 수 있단다. 푹 자고 내일 가서 아는 대로 쓰거라" 고 말해 주는 거예요. 이 아이는 어맘가 공부 그만 하고 일찍 자라고 하면 오히려 방문 잠가 놓고 자는 척하며 공부합니다.

우리는 더 큰 불행을 겪어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 행복인 줄 압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그대로 행복인 줄 아는 것, 그것이 진리에 눈뜨는 거예요.

의욕이 없고 무기력한 아이들은 자극이 필요해요. 고생을 하든지, 힘든 여행을 하든지 해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는 경험을 좀 쌓아야 합니다.

"그래, 걱정하지마.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아이들이 놀고 싶어 한다 해서 무조건 놀게 내버려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욕심으로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솔직히 우리가 다 공부를 좋아합니까? 공부는 열 명 중에 한두 명만 하면 돼요. 기본 상식선에서만 배우면 되고 학문을 할 사람은 전문적으로 공부하면 되는 거예요.

진정한 부모라면 자식이 자신의 취향과 기질, 재능에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해요. 이십대에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여기에서 일해 보고 저기에서도 일해 보고, 고생도 하면서 제 나름대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대기업에 들어가 좋겠다고 하지만 '내일 사표 낼까, 모레 사표 낼까.' 이런 마음으로 사표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면 행복하겠어요? 그 속을 모르니까 좋아 보이는 거예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자기가 만족하며 자기 힘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해요. 부모가 자식한테 할 일은, 이러한 가치관을 갖도록 자식을 돕는 것뿐이에요.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 인생에 간섭도 하지 말고 특별히 애한테 뭘 해주려고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이를 키울 때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야단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엄격하게 구분해서 부모가 실천해야 해요.

"엄마도 가슴이 아프지만 너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러면 네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어. 그러니까 매를 맞아라."

인도처럼 아주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곳이나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고 직접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내면에서 '아,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자각이 일어나면 치유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가 만 번을 말해 봐야, 하면 할수록 저항감만 더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래라 하면 저렇게 하고, 저래라 하면 이렇게 하면서 일부러 저항을 합니다. 반드시 인도에 갈 필요는 없어요. 인도를 가라는 것은, 그 곳의 생활이 열악하기 때문이에요. 말이 안통하면 손짓 발짓 해가면서 엄마와 자식이 같이 고생을 해야 무언가 변화의 기운이 옵니다. 

 

 

 

태내교육

뱃속에 있을 때 지금보다 훨씬 많은 뇌세포를 사용한다. 책을 읽어주고 산수를 가르쳐주어서 세포들을 50~70% 정도 늘러 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출생 전의 이 중요한 시기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흘려보내는 건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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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대화

우리는 아이가 태내에 있을 때부터 음악을 들려주고 알파벳, 수 세는 법, 생활 도구나 동식물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르쳐 왔습니다. 

아이들은 생후 2일만에 단어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3개월에는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 지능의 발달을 보이고, 6개월에는 유아용 변기의 사용법을 익히더니, 9개월에는 걷기 시작해서 운동 능력도 빠르게 발달했습니다.

1986년 11월 오하이오 주 뉴콩코드에서

지쓰코 스세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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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가 어느 정도의 학습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다만 그것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어느 수준의 능력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태아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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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복음 25,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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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 이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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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어요.

 

 : 그래도 그만두진 말아야지. 잘리는 거야 할 수 없지만, 스스로 때려치우진 말아야지. 무조건 버켜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루이 : 버티면 언젠가 상황이 좋아질까요?

-조앤 :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지는 않을 거야. 대신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I wish I could tell you it gets better. But, it doesn't get better. You get better.

 

'나 이제 때려치울 거야!' 하고 물러나면 나의 한계가 거기까지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버텨야겠

습니다.

 

 

-

 

살아보니 인생은 들인 노력에 비례해서 성과가 쭉쭉 올라가지는 않더라고요. 아무리 공을 들여도 변화가 없는 시기가 한동안 이어집니다. 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니라 아직 노하루가 덜 쌓였던 거예요.

실패의 경험도 자꾸 쌓여야 성공의 노하우로 바뀝니다. 가도가도 그 상태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첫 번째 계단을 만나면 불쑥 올라갑니다.

 

영어실력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리며 올라갑니다. 양이 쌓여야 질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

 

매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훗날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올힘픽에 출전하고 싶어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고 있지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그런 것이다. 영어 공부를 그만두면 영어를 쓰는 일에 종사하게 될 가능성은 제로다. 훈련을 그만두면 올림픽 대표 선수로 선발된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지속하는 힘. 고바야시 다다아키. 아날로그)

 

'점과 점은 이어진다' 인생에 버려지는 노력은 없다.

(스티브 잡스)

 

 

-

 

A :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가 언제 같으냐?

B : 스무살 아닌가요?

A : 그렇지 않아. 나이 스물은 하고 싶은게 뭔지 모르고,

나이 서른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할 줄 아는게 없어.

나이 마픈이 되어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온단다. 넌 아직 전성기가 오려면 멀었어.

 

그때는 선배님 말씀이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그보다 더 고마운 충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더욱이 100세 인생을 이야기하는 세상이니, 새로운 시도는 언제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에는 오래 일할 수 있어야 노후가 행복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마음에 맞는 일,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찾는 게 우선입니다.

서른 살 넘어 취직 못 하고, 결혼 안 했다고 절대 불안해할 이유가 없어요.

 

100세 시대, 인생을 좀더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일과 공부와 놀이가 돌고 도는 순환의 삶을 사는 시대거든요.

 

 

-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직업 유동성이 커질 겁니다. 그런 시대에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직무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영어와 업무 간에 연관성이 없더라도, 독학으로 갈고닦은 영어 실력은 취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성실함인데요. 국내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 내적인 동기부여가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증명이 됩니다.

 

 

-

 

언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를 즐기는 것입니다.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고 외국인 친구를 만나고... 영어공부는 인생의 다채로움과 맞물려 더 큰 즐거움을 낳습니다.

영어 공부만큼 취미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도 없어요.

 

 

-

 

자꾸 실수를 해보는 과정을 통해 배워야 하고, 잘하는 사람을 만나도 기죽지 말고 자신의 영어를 해야 합니다.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도 스키 탈 때처럼,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실수하면서 배워야 합니다.

어려서 영어를 배울 때 스트레스가 컸던 건 시험 탓이에요.

즐기고자 배우는 영어, 틀려도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일단 한번 들이대보세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해요.

 

 

-

 

저는 영어 회화 테이프를 수십 번씩 듣고, 문장을 닥치는 대로 외웠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홀로 무공 수련에 힘쓴 지 18개월, 어느덧 저는 벽안 무사들의 대화를 들으면 그들의 속내를 금세 알아챘고, 입을 열면 생생한 영어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영어 청취와 독해, 회화(영작) 삼박자를 갖춘 고수가 된 것이죠.

 

고수는 머리가 아니라 몸을 단련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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