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
당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다.
의학의 발달로 목숨이 몇 개나 더 생겼고, 교통수단의 발달로 공간적 거리도 기적적으로 단축되었고 생활의 편리함으로 저마다 생애의 양은 엄청나게 확보되었는데, 여전히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야 하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생각할 수록 비논리적이다. 말하자면 정오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날이 다 저물도록 공항 로비의 의자에 묶여 시간을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결혼에서 세부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 5년을 사는 결혼, 10년을 사는 결혼, 15년을 사는 결혼, 혹은 아이를 낳는 결혼과 낳지 않는 결혼, 물론 재산 정리에 대한 논의도 미리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의 세부 디테일과 지향도 매뉴얼마다 달라지게 된다. 여행을 함께 하는 결혼, 맛있는 것을 함께 만들어 먹는 결혼, 운동을 함께 하는 결혼, 컴퓨터 게임이나 등산이나 낚시를 함께 하는 결혼, 춤을 함께 추러 다니는 결혼, 봉사를 하러 다니는 결혼, 아이를 입양해 키워 보는 결혼...
결혼한 견우와 직녀
그들의 눈앞에 사랑보다 더 급하게 꺼야 할 결혼한 사람의 의무들이 가로놓인다. 견우는 소를 부리고, 직녀는 베틀을 짜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하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육아와 효도, 아이들의 교육, 사회적인 교류, 그러면서도 언제나 가족에게 속해 있어야 하는 구속성... 결혼한 사람들에겐 수많은 의무가 막중하게 부과된다. 문화를 계속 보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고 다음 세대를 교육시키고 저축을 해야 하는 강요들. 그걸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걸 이행하지 않으면 바로 결혼의 파멸이 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이야말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아닌가.
현재의 가정은 전형성을 잃었다. 모두 다른 결혼들이 저마다 떠돌고 있다. 결혼과 가족제도는 원형적인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아무리 질문해본들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하긴, 좋은 사람들끼리 하는 좋은 결혼이 없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결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허기가 존재한다. 타인의 피부와 체온과 손길과 눈빛, 점막의 다정함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
family의 어원은 가내 노예라는 뜻이다. 요즘은 사랑과 낭만 때문에 결혼하지만, 가정의 기원은 경제단위이고 노동이 수행되는 장소이다. 스위트 홈이니, 모성이니, 휴식처니 하는 말은 전부 남자의 시각에서 요구한 말일 뿐이다.
사랑이 삶의 예외가 되는 때도 그저 시작의 한 시기일 뿐이다. 어떤 사랑도 결국 일상의 틈 속에 스며들고 생활이 될 테니까. 아픔 때문에 매이는 존재, 때로는 아주 가벼워지고 싶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
추억과 꿈의 세 번째 공간이 필요하다.
모든 하루하루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사랑도 한 번쯤 더 할 수 있지 않을까(다만 좋아할 뿐이다. 다만 사랑할 뿐이다)
달팽이의 짝짓기 장면은 예쁘기 짝이 없다. 소라를 짊어지고 만난 두 마리의 달팽이가 각자의 집을 곁에 둔 채 손바닥을 겹치듯 꼭 포개진다. 그러고 나면 각자의 집을 끌고 또 제 갈 길로 떠난다.
우리는 다만 자기 방식대로 사랑하고 실패할 수 있을 뿐이다.
약간의 권태가 스며든 조금 오래된 연인들. 우리 좀 오래 되었지, 라고 생각하는 진지한 연인들.
그들이 사랑을 통해 상상하고 갈망하는 모든 것을, 서로를 통해 끊임없이 실현시키는 충실하고도 노련한 연인들.
삶이 그렇듯 사랑 역시 매우 사적이고 애매하고 미결정적이며, 성향에 따라 운명에 따라 깊이도 형태도 비중도 천차만별인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삶이 깊어지면 개념은 사라진다. 진실은 사랑의 몫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존중이었다.
새벽 4시에 초인종을 누른 사람. 유구무언이지만 벨을 누른 그것으로 충분히 용건이 표현된다.
물의 움직임에 나를 맡기듯, 나 자신을 고스란히 맡겨보는 것. 그것은 문제를 뛰어넘는 방식이기도 하고 문제를 끌어안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제를 문제시하지 않는 방식. 내가 인생을 꽉 쥐고만 있는다면 아마 내 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완전해 보인다. 우리는 늘 불완전하고 늘 잃어가고 늘 어딘가로 가는 불확실한 과정 속에 있다... 잃는다는 건 당연한 지불이다.
지나고 보니 나쁜 일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 갈 길로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별도 달도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저 홀로 떠나가는 것도..